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윤종 교수님이 내 삼촌도 아닐 뿐더러
그렇다고 무슨 대안이 있거나 따로 준비해 놓은 것이 있는 것도 물론 아니야.
그저 나는 차라리 중간고사 보지 않는 게 더 유리할 것 같아서
아예 중간고사 끝날 때까지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거든. --;
이번 학기는 내 대충 살아온 학생의 역사상에서도 최고야.
과거에는 그래도 친구들 몇과 수업을 같이 들어서 학교 안 오면 전화도 해주고, 소식도 전해주고 했었는데
이번엔 완전히 혼자거든.
그러다 보니 정말 등록한 이후 한 번도 학교에 못 가게 되네. --;
사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는 있지만 학교를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귀찮음과 내 사랑스러운 게으름 때문이야.
막상 학교에 가면 수업이 얼마나 유익하고, 즐거운지 실감을 하게 되지만
문을 열고 나서는 그 하나의 벽이 얼마나 높던지, 나는 학교에 갈 별다른 의지를 뿜어내지 못해.
걱정이야.
삼품제도 걱정이고, 졸업시험도 걱정이고, 학점도 걱정이고, 졸업 후에 살아갈 일도 걱정이고...
크게 내색은 하고 있지 않지만 나도 많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처럼
졸업 후 미래를 걱정하고 있어. 막막하고 암담한 느낌, 어쩌면 더 심할 지도 모르겠어.
기본은 하자,라는 선배 말.
내 정곡을 제대로 찌른 것 같아 많이 뜨끔했어.
아무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졸업장 얻어내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조금만 더 성실했다면, 조금만 더 부지런했다면
학교 조금 가는 게 큰 어려움은 아니었을 거야.
같이 일하는 우리 다른 멤버들은 나와 달리 학교, 잘 다니고 있으니 말이야.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나는 내 생각에 빠져있다는 기본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스스로 논리를 만들어 내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내는 것 같아.
이제는 많이 불안해지기도 했지만
사실은 아직도 나의 길에 대한 확신과 신념은 다소 남아있거든.
나는 삶의 의미를 원하는 대로, 어차피 한 번 사는 삶, 원 없이 살자는 데에 두고 있어.
또한 그 지향점은 무위고, 그것은 이른바 게으름과 나태, 빈둥거림만으로밖에 실현될 수 없다는
황당한 이념의 신봉자이고. --;
심지어 이 모든 것들이 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철저한 운명론으로 위장되어 있기에
나는 나의 의지 자체를 무시하고, 나의 실패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지녔어.
나는 이토록 황당하게 독단적이고, 주관적이야.
그래도 기분은 좋아.
아는 선배 한 명 없던 대학 생활이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챙겨주는 선배가 있다는 게
마냥 행복하기만 하네. ^^
실현된 적은 없지만 여전히 말은 해두겠는데, --+
다음 주 정도에는 학교에 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쌈박걸들과 맛있는 점심, 혹은 저녁을 준비해 둬야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