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100분 토론 [편가르기 사회 해법은 없나], MBC, MBC, 2001.7.26, 방송, 한국
나는 요즘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과의 전투를 아주 흥미롭
게 보아왔다. 또한 MBC와 조선일보와의 각개전투 역시 쏠쏠
한 재미를 주는 건 마찬가지.
게다가 오래 전부터 거침없는 행보로 자신의 주관을 일관
되게 밝혀온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고문이 패널로 참가한다는
소식은 나를 오랫동안 이 프로그램을 기다리게 만들어 버렸
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보면서 토론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오
직 노무현 고문뿐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경직된 사고, 위압적인 말투, 굳어진 얼굴은 토론자의 자
세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근본이자 토론의 기본
은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인정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 있을 게다. 박일문은 토론에서 먼
저 자세를 기울이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토론은
흥분하지 않고, 여유 있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 나는 미
국인들의 토론에서 방청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며 부드럽게
상대방을 공격해 나가는 모습이 좋다. 노무현 고문은 그렇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패널로 참가한 하순봉 한나라당 부총재는 전
형적인 권위주위풍이었다. 어쩌면 조선일보에 다소 반감을
갖고 있는 MBC이기에 그 같이 토론에 무지한 사람을 한 측의
대표로 선정한 건 아닌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으니. 그는 고
압적인 자세로 격렬한 어휘를 남발했으며, 상대방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자기 이야기, 그것도 상대방의 비난 일색인 그런
이야기를 하는 데 분주하였다. 대답하기 껄끄러운 답변은 토
론 핵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말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
가시키며 빠져나갔고, 보통의 사람들이 모를 사실을 근거로
삼아 비난을 하곤 했다. 이를테면 97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지원된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를 단순히 정부 보조 때문
에 시민단체가 정부의 편에 서있다는 잘못된 인과관계가 그
예이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외국단체의 이름을 빌리는 것
은 구시대적 사대주의 발상이자 권위에 호소하는 70년대 풍
이었고, 일본인과 비교하면서 자괴적인 발언을 하는 건 저희
나라가 아니고 우리 나라라고 써야한다는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의 교육을 떠오르게 했다. 나는 일본인과 비교해서 하나
도 꿀리는 게 없는데 왜 지가 마음대로 나를 포함한 한국인
전체를 부끄럽게 하는지. 나라면 그 같은 사람과 같은 자리
에 앉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짜증이 났을 게다.
같은 쪽 패널로 역시 참가한 김석준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
수의 자기 기회를 차분히 기다릴 줄 아는 모습은 만족스러웠
다. 그러나 언젠가 한 친구가 이화여대 행정학과에 재학했던
사실을 생각하니 슬퍼졌다. 그런 교수 밑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거부할 것이다. 김 교수는 자신의 생각이 워낙
완벽하다고 믿고 있기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작금의 갈등은 소모적이다. 언론사든 정당이든 시민단체
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났다면 처벌받는 건 당연하다. 조세
포탈을 했고, 정치권과 결탁하여 정당치 못한 이윤을 챙겼다
면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 사
회에서는 그게 문제가 되고 있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
다만 의혹이 남는 부분은 세무조사가 얼마나 공정하게 이
루어졌는지에 관한 것일 텐데 이 부분은 역사 이외의 대안이
없는 문제다. 세무서든 검찰이든 외압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
았는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처벌을 거부하는 것은 분
명히 잘못됐다. 표적수사라고 해도 자신의 범죄가 인정되지
않는 건 아니니 말이다.
조금 더 개인적인 감정을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조선일보가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
중에 한 가지란 사실이 쪽팔리다. 그래도 신문을 보는 사람
들이라면 일정 지식을 갖춘 사람들일 것인데, 그 정도로 우
리 나라에 보수우익이 많은 건지, 아니면 다들 양 많은 조선
일보의 정치 이외의 기사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건지 모르겠
다.
며칠 전에는 왜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볼까 하는 생각에 지
하철에서 조선일보를 한 부 산 적이 있는데, 내 맞은편에 안
자있던 사람이 다 본 한겨레신문을 자랑스럽게 무릎 위에 펴
놓은 걸 보고 나는 부끄러워졌다. 어떤 건지 알아보기 위해
한 부 사본 거라는 핑계를 분명히 나는 갖고 있었음에도 불
구하고 젊은이, 그것도 대학생이란 신분을 갖고 있는 내가
조선일보를 들고 있다는 사실은 다시는 안 만날 사람들에게
도 아주 창피했다.
조선일보 비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한겨레신문
도, 상대정당과 마찬가지로 소모적인 공방, 그리고 근거 없
는 망언들을 일삼는 민주당도 실망이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
이긴 하지만 갈수록 황당함을 주는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요즘 TV를 자주 장식하는 구로 갑 출신의 김기배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우리 가족과 안면이 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나
는 가족 모두가 지지하는 한나라당을 반대한다. 물론 언젠가
만났던 호남 출신 대학생이 민주당에 대해 이유 없는 지지를
밝히는 것 역시 싫다. 나는 민주당이 그런 지역주의적 지지
를 모두 포기하고, 완벽한 전국 정당으로 바로 서기를 갈망
한다. 호남인들은 그런 피해의식이야 말로 지역주의를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도구라는 걸 왜 모를까. 맹목적인 호남인은
자가당착적인 한나라당 사람들보다도 더욱 멍청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왜 정치가 답답한 건지 알겠다. 정치는
정말로 많은 이해관계가 엮여있고, 그러다 보니 자기 마음대
로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을 수밖에
없어 답답한 마음이 어찌 없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더욱 답답한 것이 힘 적은 일반 사람들이
다. 일반 사람들이 뭉친다면 지금 권력을 갖고 놓치지 않기
위해 아둥바둥 하는 저 시대의 악한들을 모조리 처단할 수
있을 것인데, 사람들은 생업에 너무 바쁘다. 또한 내 자신,
그리고 나와 같은 대학생들에게 실망한다. 어떻게 여자 하나
건져서 한 번 해볼까 고심하는 나나 사이판 보내준다고 나이
트에서 옷 벗어 재끼는 여대생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아직
까지 왜 조선일보가 잘못 됐는지 모르는 대학생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동경하는 7-80년대 대학생들도 어쩌면 모두가 혁명전
사는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선배 말에 따라 그저 재미있기에
데모에 참가했을 지도 모르고, 책 한 권 안 읽고 공산당선언
운운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처럼 조잡한 범죄를 저지르는 대상이 대학생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졸업 후 취
업걱정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생각했고, 판타지물을 읽기보다
는 철학서적을 읽었을 그들이 부럽다.
물론 우열을 말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만. 단지 내가 그
랬다면 하는 개인적 소망뿐.
2001. 7.26 조선일보를 보거나 호남에 열광하는 대학생은 이성을 떠나
감정적으로 싫다. 사실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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