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사사 게시판』 35651번
제 목:(아처) 문화일기 166 the Beach
올린이:achor (권아처 ) 00/02/10 21:57 읽음: 10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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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each, Danny Boyle, 1999, 영화, 미국
근 1년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999년 4월 민석이 준 시사회 영화표로 본 Virus,란 영화 이
전에 내 돈 내고 본 영화는 1999년 2월의 쉬리,가 고작이었
다. 그런데 그 쉬리마저 술에 취해 극장에서 내내 조느라 이
번 1월 2일, TV에서 상영해 주고서야 비로소 쉬리,의 내용을
알 수 있었으니 기실 내 영화에 대한 기억은 아주 오래 전
일이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극장을 일부러 피해온 건 또 아니다. 그간 난 끊
임없이 시도를 하긴 했었다. 항상 예매를 못해 보지 못했을
뿐이지 극장 앞은 수없이도 들락날락 거렸었다. 예매를 해서
라도 꼭 보고 싶다는 충동을 준 영화는 내 앞에 없었던 게
다.
설날 연휴에 영화를 본 적도 이번이 처음이다. 항상 시골
에 내려가 유배생활을 해야했지만 이번엔 운이 좋아 처음으
로 종로의 극장가를 찾게 되었었는데 헉, 그토록 사람이 많
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역시 사람들은 각기 저마다의 모
습을 살아가고 있다.
영화를 마치고 나온 관객들의 실망스런 반응과는 달리 그
렇게 나쁜 영화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의 재미, 곧 웃긴다거
나 흥겹다거나 신나는 면은 부족했을지 모르겠지만 잔잔한
재미는 충분히 넘실거리는 영화였다.
그들은 지상의 천국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말한
다. 반드시 존재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물론 이 세상의 지상낙원은 없다, 행복, 천국, 파라다이스
는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 정도의 유아기적 파
랑새, 같은 결말을 감독이 이야기했다면 영화는 무척이나 식
상하고 새로울 것 없는 그저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 그
런데 사실 이 영화도 그 점에 있어선 마찬가지였다. 천국에
관한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우리가 꿈꾸던
천국은 결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이상일 뿐이라는
천국의 몰락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내가 좋게 생각하게 있는 까닭은 기억
에 관한 여운에 있다. 젊은 날 한 순간의 꿈으로 남아있는
그 기억이 사진 한 장을 통해 다시 현실 속에서 살아나는 장
면이 아주 선명하게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런 일은 정말 현
실에도 있다. 짧은 순간 너무나도 즐겁게 놀아 집으로 돌아
온 뒤 느끼는 짙은 아쉬움과 가벼운 허탈감, 그럴 때면 내가
긴 꿈을 꾼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 속에서 난
여운을 느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관한 매력은 전혀 느낄 수가 없
다. 난 브레드 핏,을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남자에 대한
차별은 아닐 게다. 그럼에도 너무도 맑고 깨끗한 바닷물과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백사장, 그리고 관능적인 수
영복의 여인들, 그는 영화에 어울리는 언제나 소년 같은 느
낌이라고 이번에 생각했다.
지금, 사람을 움츠리게 하는 이 겨울로부터 벗어나 뜨거운
여름을 느끼고 싶다면, 시원한 바다가 생각난다면 멋진 자연
의 모습만으로도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비록 재미가 없
을지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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