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사사 게시판』 25923번
제 목:(아처) MILK의 어원
올린이:achor (권아처 ) 97/11/21 19:13 읽음: 46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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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돋나 널널했다. 할 일이 필요했다. 할 일을 찾아야만 했다.
우리는 Milk Coffee를 마시며 이런저런 헛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그리하여 난 Marlboro를 피면서
문득 생각난 Marlboro에 관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주었고,
그는 '그게 모야! 씨방새야!'라고 나를 비난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Milk에 관한 어원이었다.
1
도서관 안은 마치 모든 사람들이 잠든 공동묘지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간혹 가다 들리는 기침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모든 소
음의 전부였다고나 할까. 사방은 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모두들 일률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두꺼운 안경을 눌러쓴 채 책
안의 검은 문자만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사람의 모습 같지가
않았다. 마치 공장의 기계들처럼, 그렇게 자신을 상실한 채 내
적, 외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만 같았을 뿐이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한 것이지만 그런 공간에
내 자신도 속해 있다는 것이 마치 기생충이 우글우글 거리는 투
명한 병 속에 빠져 버린 기분이었다. 어떻해서든지 그 공간을 벗
어나고 싶었다.
"야!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
정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역시 수많은 기생충처럼 말을 잃어
버린 채 기계적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야!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니까."
내가 거듭 재촉하니 정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귀찮다는 듯이
내뱉었다.
"공부나 해."
갑자기 생각나는 '노력하는 학생과 함께 합니다.'! 난 자리를 박
차고 일어섰다. 의자가 크게 흔들려 소리가 그 지치도록 하얀 벽
을 치듯이 울렸지만 아무도 의식하지는 않은 것만 같았다. 모두
들 감각을 상실한 기계들이었으니...
휴게실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앉을 상상
만으로도 포근한 느낌이 밀려오는 쇼파 위에서 그들은 다시 자신
을 되찾은 듯 웃음이 넘쳤고, 생기가 넘쳤다. 난 어학연수 광고
지와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광고지가 더덕더덕 붙어 있는 자판기
앞으로 다가갔다. 자판기 위의 그 광고지들은 매우 불규칙한 형
태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하학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부자연스러움의 질서라고나 할까.
100원 짜리 동전은 '챙'하는 소리를 내며 자판기 안으로 들어갔
다. 그 소리가 얼마나 경쾌하던지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던
기생충 생각을 떨쳐 내 주었다. 난 'MILK'라고 씌어진 선택바를
눌렀다. 탈지분유로 만든 우유는 어려서부터의 내 자판기 단골
메뉴였던 것이다. 한때 프림을 줄이고 설탕을 많이 넣은 커피나
우유를 첨가한 코코아를 좋아하긴 했지만 금새 실증이 나곤 했
다. 그렇지만 우유만큼은 오랫동안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뿌연
색깔도 맘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지난 추억을 되
새겨 주는 그런 느낌이 우유에는 배어 있었다. 난 그게 좋았다.
어린 시절 우유를 마셨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왔
다. 정수였다.
"짜식! 삐진 거야?"
"삐지긴."
"아우! 나도 커피 좀 마시고 해야겠어."
내가 우유를 꺼낸 후 그는 '밀크커피'를 눌렀다. 그리곤 우리는
쇼파에 앉아 수고했던 육체와 정신에게 휴식의 시간을 줬다. 난
Marlboro 한 개비를 꺼내 입어 물었고, 정수도 한 대 주었다. 정
수의 입술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와 가는 눈매, 그리고 한 대의
담배는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부는 잘 돼?"
"아니. 오랜만에 공부를 하려니 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정말 그랬다. 난 너무 오랜만에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휴. 나도 그래. 기말고사가 며칠 안 남았는데 공부는 안 되고.
정말 걱정이다."
뭐라 대답할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아 난 그냥 입을 다문 채 담
배를 한 모금 빨았다. 기말고사! 마치 나와는 관계없는 이들의
이야기처럼만 느껴졌다. 난 그만큼 학업에 신경을 쓸 만큼 정신
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다.
"경옥이하고는 어때? 요즘 잘 돼 가?"
"으휴. 모르겠어. 더 이상의 진전이 없어. 이제 곧 걔 생일인데
같이 지내자고 할 용기도 안 나고."
그녀는 내가 만난 최고의 천사였다. 몇 달 전 한 허름한 호프에
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게 됐는데 그녀는 그 옆 테이블에 앉았던
여자였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난 그대로 경옥
에게 빠져 버리고 말았다. 굵은 눈매와 갈색빛 긴 생머리,
JanSports가 새겨 있던 후드티에 까만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던
그녀의 모습은 정말 천사와 같았다. 난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지금까지 삶을 충실하게 계획해 오지는 못했지만
기회란 것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닌, 한 번 놓친 그 기회는 다시는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내 짧은 생에서 배워 왔기 때문이었다. 결
국 조금 술이 오른 덕에 난 용기를 내어 봤다. 엉거주춤 자리에
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의 손을 다짜고짜 잡고는 밖으
로 끌고 나와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
녀는 영문도 모른 채 그렇게 나를 따라왔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
게 그 호프 뒤 주차장에서, 얼굴을 맞댄 지 10분도 안 지났을 때
첫 키스를 나눴다. 그녀의 입술은 참으로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
녀와 키스를 하면서 난 백옥빛 생크림 케익을 먹는 상상을 했다.
"용기를 내 보란 말야." 정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고로 용기
있는 남자만이 미인을 얻는 법이라고 했으니까"라고 덧붙였다.
"넌 매번 우유만 마시는 구나."
"응. 난 그냥 우유가 좋거든. 경옥이 그냥 좋은 것처럼 말야."
"하하. 짜식! 강조하기는. 참, Milk에 관한 어원 알아?"
"Milk에 관한 어원? 글쎄. 모르겠는데."
"이 얘기가 어쩌면 너의 사랑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지도 모르
겠는걸."
다음은 정수가 말해 준 Milk에 관한 어원의 이야기이다. 정확히
는 생각이 나지 않아 내 임의로 고쳐서 기록하지만 최대한 그가
말해 준 것에 충실하게 적어 본다.
2
때가 언제인지, 장소가 어디인지는 정수도 모른다고 했다. 단지
유럽 쪽의 어느 목장이라고만 했는데 상황을 봐서는 프랑스나 혹
은 스페인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넓은 목장이 있었다. 그곳은 파란 하늘이 보이는 곳이었고,
넓은 초록빛 초원이 펼쳐진 곳이었다. 그 곳에는 알퐁스라는 젊
은 목동이 있었는데 그는 그런 자연은 시로 노래할 줄 하는 무척
이나 낭만적인 젊은이였던 것 같다. 그는 자연을 사랑했고, 동물
을 사랑했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로서는 너무도 만족
할 만한 것이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 날도 여느 날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간단한 요기와 세면을
한 후 젖소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날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바로 아랫마을에서 한 달에 한 번, 약간의 먹을 것과
이것저것 물자가 오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알퐁스는 평소보다 조
금 서둘렀다. 그렇다고 조금의 실수가 있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목장에서 일해 왔기에 무슨 일을 하든 그에게는 아주 익숙한 일
이기 때문이었다. 젖소들에게 여물을 준 후 짬을 내어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을 쓸어 놓았다. 항상 청결하게 살아온 그였지만 조
금 더 깨끗하다고 나쁠 것은 전혀 없으니. 해가 남쪽에 올라서자
오전까지도 없었던 먹구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오려
나... 이제 잠시 후면 '딸각딸각'하는 소리를 내며 릴케 아저씨
가 모는 마차가 도착할 것이다. 그런 후에 우리는 뜨거운 우유
(Cowliquid)를 마시며 세상이 그 동안 어떻게 돌아왔는지 얘기를
나눌 것이며, 저녁때가 되면 다시 다음 달을 기약하며 헤어짐을
나눌 것이다. 알퐁스는 이 한 달에 한 번 있는 날이 참으로 행복
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좋아하는 스테파니 아가씨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목장 주인집 딸로 알
퐁스보다 1살 어린 무척이나 귀여운 소녀였다. 오똑한 코가 가장
눈에 띄었고, 단정하게 딴 긴 머리, 그리고 빠알간 입술은 너무
나도 사랑스러웠다. 그렇지만 그 뿐이었다. 알퐁스와 스테파니
사이에는 너무도 다른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던 것이었다.
또한 그렇게 귀여운 스테파니의 눈에 자신이 들어올 리도 없을
거라고 알퐁스는 생각하고 있었다.
'딸각딸각'
'드디어 왔나 보군.'
알퐁스는 기다리던 릴케 아저씨가 온 것을 알고 멀리 보이는 마
차 앞으로 달려나갔다.
"릴케 아저씨! 오늘은 조금 늦으셨네요."
알퐁스는 너무 기쁜 마음에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보통
때 같으면 '그래! 알퐁스! 일이 바빠서 조금 늦었단다.'라고 적
당히 대구 해 주었을 릴케 아저씨가 아무 말씀이 없었던 것이었
다. 알퐁스는 의아해 하며 마차 앞에 다가섰는데, 순간 그는 놀
라 쓰러질 뻔했다. 마차를 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스테파니
아가씨였던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알퐁스 오빠!"
귀여운 스테파니는 너무도 달콤한 목소리로 인사하였지만 알퐁스
는 입이 얼어 잠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스테파니는 알
퐁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얘기를 이었다.
"릴케 아저씨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건너마을에 갔어요. 그래서
제가 온 거예요. 저 여기 참 와 보고 싶었거든요."
살며시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는 스테파니를 보며 알퐁스는 정신
을 잃을 것만 같았다. 잠시 후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예. 스테
파니 아가씨가 오시다니 조금 놀랬지만 참 반갑네요."라고 인사
했다.
알퐁스는 스테파니에게 목장을 구경시켜 줬다. 어려서부터 몸이
안 좋았던 스테파니는 아버지 소유의 목장에 온 것은 자신이 기
억하기로는 최초였다. 무한히 뻗어 있을 것만 같은 푸른 초원이
너무도 평화로웠고, 얼룩덜룩한 젖소들도 너무도 착해 보였다.
스테파니가 그렇게 자연에 감탄하고 있으니 알퐁스는 왠지 자신
이 우쭐한 기분이 느껴졌다. 꿈에 그리던 스테파니가 자기 옆에
서 함께 행복해 하다니, 알퐁스는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알퐁스 오빠는 참 좋겠어요. 이런 곳에서 매일매일 사니까요.
참 평화롭고 평안할 것 같아요."
"꼭 그렇지도 않아요. 물론 마음이 편안하기는 하지만요, 이것저
것 번거로운 일들이 많거든요. 하기야 모든 것을 잊고 여기서 자
연과 더불어 생활한다면 꼭 그리 불편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겠
지요."
"예. 저도 저런 소들과 함께 살면서 마음껏 자유롭게 초원을 달
려 보고 싶어요."
스테파니가 말을 끝냈을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낮부터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소나기가 내릴
것 같았다.
"앗! 비가 오나 본데요. 구름을 보니 소나기 같은데 안에 들어가
잠깐 쉬었다가 비 그치면 내려가세요."
"예. 그게 좋겠네요. 오빠."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그리 좋은 산채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잘 꾸며져 있었다. 나무도 만들어진 그 곳의 벽에는 알
퐁스 자신이 직접 그린 초원의 그림이 걸려 있었고, 반듯한 정사
각형의 탁자와 아기자기한 원목 의자 네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
었다. 알퐁스는 의자를 끌어내어 스테파니를 앉게 했고, 따뜻한
우유와 스테파니가 가져온 버터로 구은빵을 대접했다. 산뜻한 우
유는 보기에도 참 신선해 보였고, 간간이 땅콩과 건포도가 붙어
있는 잘 구워진 빵은 누가 보더라도 먹음직해 보였다. 알퐁스는
우유를 마시며 스테파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큼지막한 그 눈망울
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났고, 그렇게 계속 바라본다면 마치 커다란
호수에 빠지듯이 푹 흡수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하얀색 레이스
가 달려 있는 스테파니의 옷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알퐁스와는 다
른 귀한 티가 은은히 났고, 뽀얗고 조그만 스테파니의 손은 마치
자그마한 사과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약간의 침묵이 있은 후에 실로 놀라운 말이 그 조그만 스테파니
의 입술에서 흘러나오고 말았다.
"전 오빠가 참 좋아요. 별로 만난 적도 없고, 오빠에 관해 알고
있는 바도 적지만 그냥 느낌이 와요. 참 좋은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 그런 것 말이에요."
우유를 마시던 스테파니는 고개를 숙인 채 부끄럽다는 듯이 홍조
를 띄며 갑자기 그런 말을 해 버린 것이다. 알퐁스는 자신의 귀
를 의심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스테파니가 자기같이 하찮은 일
개의 목동에게 그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
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알퐁스는 마시고 있던 우유잔을 떨어트
릴 뻔했다. 다시 잠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스테파니가 부끄러
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알퐁스는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의
무감이 들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알퐁스는
그냥 그 상태로 시간이 멈춰 잠시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예?"
그렇게 침묵하였다가 알퐁스가 꺼낸 말이라고는 고작 '예?'이었
다.
"미안해요. 오빠. 오빠한테 이런 말 꺼내는 것이 실례인 것은 알
지만 전 이제 얼마 후면 이곳을 떠나야 하고, 또 그렇게 되면 다
시는 오빠를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봤어요."
스테파니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다. 알
퐁스는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저도 스테파니 아가씨를
좋아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저도... 사실은 아가씨를... 좋... 아해요."
겨우 알퐁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을 때 스테파니는 어느 새 고개
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알퐁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오똑
한 코와 맑은 눈, 빠알간 입술은 더욱 빛을 바라고 있었다. 알퐁
스는 얼굴이 화끈해져 옴을 느끼며 어색하게 고개를 숙인 채 우
유를 한 모금 마셨다.
"저... 정말이에요?"
"예."
스테파니는 확인하듯이 수줍게 물어 오자 알퐁스는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러자 스테파니는 갑자기 일어나
탁자를 돌더니 알퐁스의 손을 잡고는 그를 일으켜 그의 품에 안
겨 버렸다. 이 모든 일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그것도 순간적으
로 일어난 일이기에 알퐁스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
품에서 쌔근쌔근 숨쉬고 있는 이 작은 요정이 바로 스테파니라
니...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비오는 소리만이 들렸을 뿐,
세상은 참으로 고요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그들은 서로를 꼭
껴안고 있었고, 스테파니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알퐁스를 사랑스
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알퐁스는 그 때 어떻게 자신이 그런 용기를 내었는지 이해할 수
가 없다. 어쨌든 그는 그녀의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얼굴을 바라
보며 그녀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고, 스테파니
는 그의 입술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잠시 후 소나기는 그쳐 스테파니는 마을로 돌아가게 됐고, 그 이
후 릴케 아저씨가 오셔도 스테파니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
이미 그녀는 그녀의 말처럼 다른 곳으로 어머니와 함께 갔다는
말밖에...
그렇게 3개월이 흘렀고, 알퐁스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오시는
릴케 아저씨로부터 자그만 양가죽 꾸러미를 받았다. 스테파니는
며칠 전 급성백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과 함께.
알퐁스는 그 가죽 꾸러미를 풀러 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마
치 그것을 풀게 되면 자신의 내면에 가득 차 있는 스테파니에 대
한 아름다운 추억들이 모두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
기 때문이었다.
알퐁스는 스테파니에 대한 그 느낌을 시로 적어 나갔다. 그리곤
20살이란 나이로 자살하기 직전까지 가죽 꾸러미를 풀러 보지 않
았다. 그가 죽고 난 후에 그 산채의 아주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그 가죽 꾸러미 곁에는 한 장의 종이에 깔끔하게 적혀 있는 하나
의 시가 있었다.
MILK (a Man Images a Lovely Kiss)
난 그대와의 그 달콤했던 키스를 잊을 수가 없답니다.
그대, 비록 나를 먼저 떠나갔지만
그대와의 그 오후는 영원히 내 곁에 있겠지요.
나 다음 세상에서도 그대를 만나
잠시의 행복이 아닌 영원한 행복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신은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난 죽음으로 그대가 있는 그 곳으로
그대를 찾아가겠습니다.
다시 만날 그 날까지...
난 그대와의 그 달콤했던 키스를 잊을 수가 없답니다.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잊을 수 없었던 스테파니와의
키스! 알퐁스는 항상 그 달콤했던 키스를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
었다.
그리하여 그가 그렇게 죽고 난 후 사람들은 알퐁스와 스테파니가
함께 마셨던, 당시까지만 해도 cowliquid라 부르던 우유를 milk
라고 부르게 된 게다.
3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싸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난 그 곳으로 갔
다. 항상 고민이 있을 때면 찾아 왔던 곳으로, 아무도 오지 않는
그 고지에서 아래 세상을 바라보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정
수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첫 키스...
담배 한 개비 뽑아 물었다.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의 야경은 나의
감성을 더욱 고조시켰다. 참 아름답다!
......
그래. 좋아! 한 번 해보겠어!
난 지금 그녀의 창가로 달려간다.
그리곤 그녀의 창가 앞에서 크게 외치겠다.
"난 널 사랑한다고!"
에필로그
지금 시간이 19시!
18시에 있던 퀸카(^^)와의 약속도
우산이 없다는 핑계로 안 나간 채
이렇게 삽질을 한 결과 단 몇 시간만에
그 Milk Coffee 마시면서 했던 상상을
글로 완성 지을 수 있었다.
으하~ 별 것 아니지만 어쩐지 개운한 생각이 드는군. *^^*
비록 졸작이 됐쥐만서두~
어쨌든 좋지 모야~ ^^
건아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