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사사 게시판』 33646번
제 목:(아처) MUFFIN 0.PROLOG
올린이:achor (권아처 ) 99/07/31 03:11 읽음: 44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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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 1.01, 1999년 8월 2일 15:09 조회수 29
- MUFFIN 0.PROLOG
민주는 자길 따라오라고 조용히 내게 말했다. 어디 커피숍
이라도 가나보다 했지만 실상 그녀가 날 데리고 간 곳은 구
청 앞 벤치였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난 하늘을 보았다. 장마비가 오전, 잠시 내렸지만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매우 맑았다. 7월 말 다소 무더운 감도 있
었지만 어디선가 시원한 향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토요일 날 시간 있어요?", 난 경쾌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
다. 민주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 보면서 대화하기는 처음이
었다.
"그런데 무얼 하죠?", 민주는 다소 부담을 느낀다는 듯이
내게 도로 물어왔다.
"별다른 건 없어요. 단지 차나 마시며 얘기 좀 하고 싶어
서요. 많이 부담되세요?"
"그쪽이 착한 사람이란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전 요즘
정말 정신이 없어요. 저, 4학년인 거 아시죠? 요즘 이런저런
면접 보며 취직 준비하느라 정말이지 딴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어요."
"혹시 남자친구가 있는 건가요?"
"솔직히 없어요. 전 이상하게도 남자에 전혀 관심이 없거
든요."
침묵이 흘렀다. 난 어떻게 이야기해야할 지 몰랐다. 굳이
민주와 연인사이가 되기만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
나 나눌 수 있다면, 단둘만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내 기억 속
에 남겨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침묵이 다소 어색해질 무렵 민주가 먼저 다시 입을 열었
다.
"그런데 소집해제가 언제세요?"
"2001년 1월. 아직 멀었죠."
"세상에 예쁘고 귀여운 후배 참 많잖아요. 이제 곧 그런
여자들을 사귀게 될 거예요."
민주는 초지일관 내가 상처받을까 걱정하며 이야기하였다.
난 그럴수록 처음 신병 시절부터 좋아해 왔었노라고, 특별히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노라고, 단지 만나서 차나 마시자는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민주는 연신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
다.
줄기차게 데이트를 요구했다면 아마도 그녀는 마지못해 승
낙할 준비를 하고 날 데리고 온 듯 하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부담을 느끼는 민주와 데이트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예. 알겠어요.", 난 슬쩍 미소지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어줬다. 그땐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었다. 민주는
미안한 표정으로 뒤돌아서는 날 바라봤다.
돌아온 나를 보며 내 닦달에 마지못해 민주에게 내 대신
처음 내 사랑을 전해줬던 후배녀석이 즐거운 얼굴로 물어왔
다.
"선배님, 어떻게 됐어요? 잘 됐죠? 거 봐요. 제가 잘 될
거라고 했잖아요. 제가 나서서 잘 되지 않은 적은 거의 없었
거든요. 나중에 한 턱 단단히 쏘셔야 해요."
후배녀석을 보며 한 번 웃어주고는 자리로 돌아와 조금 전
민주와의 대화를 곱씹어 봤다. 이상하게 빠져든 느낌이 들었
다. 처음, 단순한 호감 때문에 끌렸지만 그건 사랑도, 특별
한 감정도 아니라고 스스로 믿었었는데 막상 난생처음으로
그렇게 차이고나니 어쩐지 아쉬운 느낌이 짙었다. 차라리 억
지로라도 데이트를 하여 평소 부단히 닦아온 내 여자 꼬시는
기량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운명을 철저히 믿고 있는 난 후회가 별
로 없고, 포기가 빠르단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민주와
데이트하지 못한 덕분에 어쩌면 그보다 나은 어떤 일이 날
기다릴 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며 날 위로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서점으로 향했다. 어젠 수현의 생일이었
는데 미쳐 생일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갖은 원망에 시달려야
했었다. 책을 사줘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무슨 책이 좋을
지 쉽게 정하진 못했다. 16살, 어린 제자에게 스승이란 신분
으로 사줄 만한 것을 찾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참을 생각하다 내 학창시절 꽤나 감동적으로 읽었던 젊은 베
르테르의 슬픔,을 골라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적어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평소처럼 민주는 내게서 멀
리 떨어져 있는 것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 편이 허전
해 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양한 군상을 그려보고 싶다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최대한 복잡하게 늘어놓은 후
에 이 세상은 사실 이렇노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순수한 사
랑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 보고 싶었던 게다.
98-9220340 권아처
# Ver 1.00, 1999년 7월 31일 03:11
- MUFFIN
민주는 자길 따라오라고 조용히 내게 말했다. 어디 커피숍
이라도 가나보다 했지만 실상 그녀가 날 데리고 간 곳은 구
청 앞 벤치였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난 하늘을 보았다. 장마비가 오전, 잠시 내렸지만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매우 맑았다. 7월 말 다소 무더운 감도 있
었지만 어디선가 시원한 향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토요일 날 시간 있어요?", 난 경쾌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
다. 민주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 보면서 대화하기는 처음이
었다.
"그런데 무얼 하죠?", 민주는 다소 부담을 느낀다는 듯이
내게 도로 물어왔다.
"그저 토요일에 차나 마시며 얘기 좀 하고 싶어서요. 많이
부담되세요?"
"그쪽이 착한 사람이란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전 요즘
정말 정신이 없어요. 저, 4학년인 거 아시죠? 요즘 이런저런
면접 보며 취직 준비하느라 정말이지 딴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어요."
"남자친구 있으세요?"
"솔직히 없어요. 전 이상하게도 남자에 전혀 관심이 없거
든요. 그런데 소집해제가 언제 세요?"
"2001년 1월. 아직 멀었죠."
"세상에 예쁘고 귀여운 후배 참 많잖아요. 이제 곧 그런
여자들을 사귀게 될 거예요."
민주는 초지일관 내가 상처받을까 걱정하며 이야기하였다.
난 그럴수록 처음 신병 시절부터 좋아해 왔었노라고, 특별히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노라고, 단지 만나서 차나 마시자는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민주는 어색한 표정을 연신 짓고 있었
다.
줄기차게 데이트를 요구했다면 아마도 그녀는 마지못해 승
낙할 준비를 하고 날 데리고 온 듯 하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부담을 느끼는 민주와 데이트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예. 알겠어요.", 난 슬쩍 미소지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어줬다. 그땐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었다. 민주는
미안한 표정으로 뒤돌아서는 날 바라봤다.
돌아온 나를 보며 내 닦달에 마지못해 민주에게 내 대신
처음 내 사랑을 전해줬던 후배녀석이 즐거운 얼굴로 내게 물
어왔다.
"선배님, 어떻게 됐어요? 잘 됐죠? 거 봐요. 제가 잘 될
거라고 했잖아요. 제가 나서서 잘 되지 않은 적은 거의 없었
거든요. 나중에 한 턱 단단히 쏘셔야 해요."
후배녀석을 보며 한 번 웃어주고는 자리로 돌아와 조금 전
민주와의 대화를 곱씹어 봤다. 이상하게 빠져든 느낌이 들었
다. 처음, 단순한 호감 때문에 끌렸지만 그건 사랑도, 특별
한 호감도 아니라고 스스로 믿었었는데 막상 난생처음으로
그렇게 채이고나니 어쩐지 아쉬운 느낌이 짙었다. 차라리 억
지로라도 데이트를 하여 평소 부단히 닦아온 내 여자 꼬시는
기량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운명을 철저히 믿고 있는 난 후회가 별
로 없고, 포기가 빠르단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민주와
데이트하지 못한 덕분에 어쩌면 그보다 나은 어떤 일이 날
기다릴 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며 날 위로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서점으로 향했다. 어젠 수현의 생일이었
는데 미쳐 생일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갖은 원망에 시달려야
했었다. 책을 사줘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무슨 책이 좋을
지 쉽게 정하진 못했다. 16살, 어린 제자에게 스승이란 신분
으로 사줄 만한 것을 찾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참을 생각하다 내 학창시절 꽤나 감동적으로 읽었던 젊은 베
르테르의 슬픔,을 골라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적어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평소처럼 민주는 내게서 멀
리 떨어져 있는 것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 편이 허전
해 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양한 군상을 그려보고 싶다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최대한 복잡하게 늘어놓은 후
에 이 세상은 사실 이렇노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순수한 사
랑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 보고 싶었던 게다.
98-9220340 권아처